로버트 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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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훅

로버트 훅(Robert Hooke, 1635년 7월 18일 ~ 1703년 3월 3일)는 영국의 자연 철학자이며, 과학 혁명기에 이론과 실험 양면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자 박물학자이다.

로버트 훅은 용수철과 같은 탄성체의 복원력과 변형력의 관계를 나타내는 훅의 법칙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현미경을 최초로 제작하여 "현미경의 아버지"로 불린다. 훅은 현미경을 통해 세포를 관찰하여 세포가 생물의 기본 구성 단위임을 밝혔다. 그는 현미경을 사용하여 화석을 관찰하고 초기 진화론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는 로버트 보일의 진공 펌프 제작에 관여하여 보일의 법칙 발견에 일조하는 한편 그레고리안 망원경을 제작하여 화성과 금성을 관찰하기도 하였다. 런던 대화재 이후 도시 재건을 위한 설계사의 수장을 지냈다. 굴절 현상을 관찰하여 빛의 파동성 이론을 지지하였고, 공기가 다른 물질에 비해 구성 요소 간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의 소립자들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라 추측하였다. 또한 로버트 훅은 중력의 작용이 역제곱법칙을 따를 것이라 추론하였는데, 이는 후일 아이작 뉴튼에 의해 중력의 법칙으로 증명되었다. 훅은 1662년 왕립 학회의 회원이 되었으며 그의 다재 다능한 능력은 많은 왕립 학회 회원들의 실험에 도움을 주었다.

생애

훅의 생애는 1696년 발간된 그의 자서전을 통하여 알려져 있으나 기록이 정확하지는 않다.

로버트 훅은 1635년 웨이트 섬의 프레쉬워터에서 3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존 훅은 영국 성공회의 성직자였으며 그의 다른 형제들 역시 목사가 되었다. 그의 가족은 왕당파였으며 찰스 2세가 웨이트 섬을 탈출하는 것을 지원하였다. 로버트 훅은 어려서 부터 기계를 관찰하고 해체하는 것에 관심을 보였으며 그의 이러한 관심은 일생 동안 계속되었다.

1648년 그의 아버지가 사망하자 로버트 훅은 물려받은 유산 1천 파운드를 시계공 길드도제가 될 권리의 구입에 사용하였다. 그는 런던으로 이주하여 당시 소년들을 위한 공업 학교였던 웨스트민스터 학교에 입학하였다.

1653년 로버트 훅은 파이프 오르간의 제작을 위해 옥스퍼드 성당에 갔으며 여기서 로버트 보일을 처음 만났다.[1] 그는 보일의 공기 펌프를 만드는 일을 받아 1655년 에서 1662년 까지 작업하였다. 보일은 훅이 만든 공기 펌프를 사용하여 기체 실험을 한 결과 보일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1665년 로버트 훅은 왕립학회의 전신인 "자연철학 모임"에 가입하였으며 이 후 점차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665년 로버트 훅은 현미경을 이용한 관찰기록인 《마이크로그라피아》를 출간하였다. 1678년부터 1682년까지 런던 왕립학회 회장이었으며, 1665년부터는 옥스퍼드 대학교 기하학과 교수가 되었다.


로버트 훅은 세포라는 이름을 붙인 최초의 사람이기도 하는데 현미경을 이용해 코르크마개를 관찰하여 작은 방 모양의 구조로 나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작은 방이 수도원의 작은 방같다고 하여 수도원의 작은 방 "cell" 이라는 말을 세포에 접목시켜서 현재 세포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가 "cell"이 되었다.

발명

로버트 훅이 발명한 현미경
로버트 훅이 현미경으로 관찰하여 그린 벼룩

주석

  1. Jardine, Lisa (2003). The Curious Life of Robert Hooke: The Man who Measured London. New York: Harper Collins Publishers, 65. ISBN 0-00-7149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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